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더퍼드 B. 헤이스 (문단 편집) === 선거 분쟁 === 선거 결과 헤이스는 진땀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일단 전체 득표율에선 403만 표 밖에 얻지 못해 428만 표를 얻은 민주당의 [[새뮤얼 틸던]]에게 많이 밀렸고[* 그냥 밀린것도 아니고 틸던은 이 선거에서 전체 투표수의 과반수를 획득했다(...).(득표율 50.9%) 현재까지 미국에서 득표율이 앞선 후보가 낙선한 적은 다섯번이 있지만 득표율 50%를 넘기고도 대통령이 못된 사례는 틸던이 유일하다.], 일부 주 선거가 끝나진 않았지만 확보한 선거인도 '''18명'''이나 적은 상황을 맞게 된다. 한편, 틸든은 18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함으로서 한명만 더 확보하면 과반수 확보가 눈앞이었다. 그러나 남부의 3개 주 [[사우스캐롤라이나]](7명), [[플로리다]](4명), [[루이지애나]](8명)의 선거 승자가 결정나지 않은게 문제였다. 이것이 문제가 된 이유는 3개 주의 선거인을 모두 합치면 '''19명'''이었기 때문에 만약 이 '''3주가 헤이스의 것이 된다면 선거인단 1명 차이로 전세 역전이 가능'''했던 것. 거꾸로 말하면 틸든은 세 동네 가운데서 한 군데만 이기면 대통령이 되는거였다. 그리고 1876년 선거인단 문제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공화당이 [[투표]]에서는 승리했던 [[오리건]](3석)의 공화당 선거인단 중 1명이 '''위법 선거인단이라 교체 대상'''이었던 것이다. 원래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은 연방, 주를 불문하고 [[공무원]]이 자리를 맡을 수가 없는데, 이때 오리건 공화당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선거인단으로 하필이면 오리건 주 모 지역 [[우체국]] 국장을 선거인단으로 넣어놨던 것. 위법 선거인단이 있을 경우 교체권한은 각 주 [[주지사]]한테 있었는데, 하필이면 또 당시 오리건 주 주지사는 '''민주당원'''이었다(...). 당연히 민주당 소속 오리건 주지사는 이 위법 선거인단에 대해 대체 선거인단으로 민주당원을 넣으려고 했고, 안 그래도 선거인단 딱 1표가 아쉬웠던 [[새뮤얼 틸던]] 쪽이 당연히 선거인단 교체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오리건 주 선거인단만 교체되면 나머지 [[개표]]에 상관없이 당선 확정이니) 안 그래도 혼란스럽던 정국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근데, 3개 주 선거가 재개표와 재검표를 반복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수작업으로 개표한 거라 어느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해도 분명한 건 양측의 표 차이가 수작업의 '''오차 범위 안'''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수십 번도 더 개표를 한 끝에, 결론이 난 건 대통령 취임식 이틀 전이었다(...). 결론이 난 경위를 살펴보자면, 수개표를 아무리 해도 결론이 안나자 양당은 각자 자기 측에 유리한 --정신승리--주장을 하며 정국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는데, 결국 이러한 양상을 해결하고자 특별개표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당시 개표위원은 민주당이 7명, 공화당이 7명씩 배정되고 당적이 없는 데이비스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가 상원의원이 되면서 개표위원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 자리를 '''상원 다수당(47:19)인 공화당 소속이 채우게 되었다'''.[* 사실 상원이 다수당이어서만도 아니고, Justice(법사위)에서 더이상 선임할 민주당 의원이 없었다는 문제가 있었다.[[http://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presidential_election,_1876|#]]] 당연히 결과는 8-7로 공화당에 유리한 주장이 반영되어 '''185-184'''로 헤이스가 이겼다고 선언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오리건]] 주 위법 선거인단 문제까지 오리건 주 주지사가 아닌 오리건 주 공화당 위원장이 대체 선거인단을 지명하도록 해버렸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남부는 폭발하고 만다. 당시 3주는 아직 연방군의 [[군정]]을 받고 있었던데다가 부정 투표 의혹까지 발생했던 상황이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봐도 남부 백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도둑맞은 선거'''라고 주장할 법 한 결과였다. 이때 안티 세력은 헤이스의 이름인 "Rutherford"를 비꼬아서 "Ruther'''FRAUD'''"(사기)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 입장에서도 할 말이 아예 없는건 아닌게, 당시 남부에서도 백인들이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이때만 해도 공화당 지지가 높던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했기에, 흑인에 대한 투표 방해가 없었다면 [[새뮤얼 틸던]]이 선거인단이나 득표율이나 둘 다 깔끔하게 졌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의 한 예측에 따르면 불법적인 폭력이 없었을 경우 이들 주 3개 중 2군데에서 공화당이 이기고 1군데에서 민주당이 이겼겠지만 다른 주에서 공화당이 이겨서 헤이스가 정당하게 당선됐을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http://archive.is/C7zhJ|Who Won the 1876 Election? Issue 9 of Buttons and Ballots, in Spring 1997.]] 결국 남부에서는 폭동(이라고 쓰고 반란이라고 읽는 것)이 발생하려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헤이스는 '''타협안'''을 내놨다. 그 내용이란... > 1. 남부의 군정을 종료한다. > 1. 민주당원에게 일정한 수의 각료를 배정한다. > 1. 남부인의 연방 공직 임명을 가능케 한다.[* 당시 남부 백인들은 연방에 충성 서약을 하지 않으면 [[참정권]] 등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 1. 재선에 출마하지 않는다. 이것을 1877년의 타협이라고 하며, 헤이스는 재선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약속을 지켰다. --근데 민주당은 [[제임스 A. 가필드|또 진다]]-- 허나 이때 남부에서 연방군이 철수해버리면서 방치된 남부 흑인들은 이후 1950~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흑인 민권 운동]]이 촉발되기 전까지 다시 백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박해당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하루 전에 백악관에서 [[비공개]]로 대통령 선서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